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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봄 - 13면]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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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3-05 16:03 조회 6,63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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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

(2월 24일 북한 고성 방문기)

원선영 /G.F.S. 우물가 프로젝트 사무국장

나는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다. 국민학교 내내 반공 포스터와 표어를 그렸고, 공산당을 때려잡자는 웅변대회에서 1등도 했다.

개인사로는 큰아버지가 어린 나이에 의용군으로 강제로 끌려갔고 그 기억은 아버지를 평생 괴롭혔고, 어머니는 북한에 99칸에 버금가는 큰 집과 과일 나무 등을 남겨둔 채 온가족이 남한으로 피난을 와서 온갖 고생을 경험하셨다.

최루탄의 마지막 세대로서 대학을 졸업했고, 임수경의 방북과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나에게 북한은 그저 먼 나라였다. 그냥 가슴 아픈 개인사를 만들어낸 철지난 역사 정도. 그래서 금강산 관광 붐이 한참일 때도 그 돈이면 해외를 나간다는 생각이 절대적이었다.

세월이 흘러 올 1월부터 G.F.S.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방북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번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가자란 생각!

남한이란 단어를 서류에 적어도 안 되고, 사진도 찍어선 안 되고, 돈을 가져갈 경우엔 달러만 된다는 등등의 지켜야 할 사항을 들으면서 38선을 넘을 땐 긴장 그 자체였다. 처음 보는 북한 사람의 얼굴을 빤히 보고 싶지만 무서워서 힐끔 힐끔 보기만 했고, 몸을 검사하는 북한의 어여쁜 여성의 고운 얼굴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도로 양편으론 산이 있었지만 땔감으로 베어버린 산은 민둥산 자체였고 주민들은 자전거와 걷기를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트럭에서 연탄을 내리기 위해 북한 주민과 함께 호흡을 맞출 땐 그냥 우리 옆 동네에 사는 평범한 이웃 같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몸의 호흡이 맞춰지는걸 느끼며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작업을 한 사람들은 소수의 북한 주민이었고 다수는 저편에서 우리가 얼른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오래 작업을 할수록 북한 주민의 대기 시간은 늘어날 뿐이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동했다.

우리를 접대했던 평양에서 왔다는 과장이란 사람은 나보다 훨씬 세련된 매너를 지니고 있었다. 북한에도 분명히 엘리트 집단이 있을 텐데 한 번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선 구체화를 시킨 적이 없기에 외모부터 말투까지 참기름 발라놓은 것처럼 매끈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점심 한끼를 먹고, 다시 남한으로 넘어왔는데, 너무나 짧은 시간 북한에 체류를 해서 마치 꿈을 꾼 듯 한 기분이 든다. 아주 아주 짧께 북한 땅을 밞고 느낀 점은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와 “그들의 머리엔 뿔이 없다”이다. 평소 북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심 북한 땅을 밟기 이전에 많이 긴장했었다.

많은 이들이 카페 그레이스에서 탈북 여성들이 만들어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남북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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